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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들

우울증에 걸린 파일럿이 일으킨 참사

by 소수의견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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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4일 9시 1분, 바르셀로나 국제 공항에서 한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 비행기는 독일의 저가 항공사 저먼윙즈 소속의 4U9525(이하 9525편)이다. 이 비행기는 144명의 승객을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까지 데려다 줄 예정이였다.
 
 
 
 
9시 31분, 비행기가 갑자기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곧 관제사는 9525편과 무선 접촉이 끊어졌고,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9525편의 마지막 위치 인근을 비행하던 여객기에서 0525편과 접촉을 시도했고, 인근 공군 기지에서는 미라주 전투기들이 출격해 비행기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10시 15분, 프랑스의 항공사고조사위원회, BEA에게 9525편 실종 소식이 전해졌다.
 
 
 
BEA는 즉시 7명의 수사관들로 이루어진 팀을 사고 현장으로 파견했다.
 
 
 
 
 
 


 
비행기는 알프스 인근의 산맥의 중턱에 추락했다. 추락 현장의 지형이 너무 험해서 이 지역에 접근하고 현장을 수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 비행기는 너무 빠르게 추락해서 비행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현장에서 발견한 제일 큰 잔해의 크기가 겨우 3m였다고 한다. 추후 조사를 통해 이 비행기가 시속 700km의 속력으로 추락했음이 밝혀졌다.
 
 
 
 
 
 
 


 
그래도 비행기가 공중에서 분해된 채로 추락하지는 않았던 터라 험한 지형을 제외하면 잔해의 수색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추락 비행기의 FDR)
 
 
CVR은 사고 당일에 바로 발견되었고, QAR은 3월 28일, FDR은 4월 2일에 발견되었다. 장치들은 수거되자마자 즉시 BEA의 실험실로 보내져 데이터를 추출했다.
 
 
 
 
 
 
 
 


 
 
데이터가 전해준 그 날의 진실은 충격적이였다. 9시 30분에 관제사의 명령에 따라 항로를 변경하고 1분 뒤, 비행기의 고도 설정이 100피트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100피트는 a320의 설정 가능한 최소 고도였으니,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설정을 세팅한 자는 죽고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죽음을 원했고, 나머지 149명의 무고한 목숨과 함께 죽음을 택한 이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이 비행기의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였다. 27살의 그는 2008년부터 루프트한자에서 비행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2013년에 저먼윙즈에 취직해서 이제 겨우 919시간의 비행 기록을 세운 신참이였다.
 
 
 
대체 이런 신참 부기장이 기장을 어떻게 했길래 홀로 조종석에서 비행기를 추락시킬 수 있었을까?
 
 
 
 
 
 
 
 


 
기장이 조종석에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8시 30분 24초에 기장은 조종석을 떠났고, 30초 후에 루비츠 부기장은 고도 설정을 3만 8천 피트에서 100피트로 변경했다. 
 
 
위 그래프의 파란 선이 고도 설정이다. 그는 고도 설정만 변경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고, 비행 속도 역시 계속해서 변경했으며 의자도 움직였다. 
 
 
 
 
 
9시 35분 부터는 객실 인터폰과 노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다른 승무원들이 부기장에게 문을 열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루비츠 부기장은 당연히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곧 누군가가 문을 부수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9시 40분 41초, 고도가 너무 낮으니 기수를 들라는 경고가 울리기 시작한다. 
 
9시 40분 56초, master warning이 울리기 시작했다.
 
9시 41분 6초, 비행기는 지면에 충돌했고, 비행기가 충돌하는 그 순간에 CVR은 녹음을 멈췄다. 
 
왜 승무원들은 조종석에 들어가 루비츠 부기장을 막지 못 했을까?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조종석 보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A320의 조종석 문은 강력하게 보호받고 있다. 3개의 잠금쇠가 있으며, 객실 쪽에서 키패드로 #으로 시작하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을 열 수 있는데
 
 
 
 
 


 
이것조차도 조종석에서 문 잠금을 norm에 둬야 가능한 것이고, lock으러 설정되면 답이 없다. Unlock으로 설정하면 바깥에서 그냥 문을 열 수 있다.
 
 
 
조종사들과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안 조치가, 오히려 149명의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버린 원인이 된 것이다.
 
 
 
 
 
 
 


 
이제 수사관들은 루비츠 부기장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는 지 알아내야 한다.(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제목에서 알아냈지만)

 

과연 루비츠가 비행기에 타기 전에 막을 수 없었을까? 우울증에 걸린 루비츠는 어떻게 멀쩡하게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었을까?
 
 






 
 
우선 루비츠 부기장의 의료 기록을 좀 살표보자. 2008년 8월, 그는 처음으로 심한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루비츠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는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항우울제를 복용했고, 10월까지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7월에 루비츠를 담당했던 의사는 그가 이제는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 덕에 7월 28일에 우울증이 재발하면 무효화한다는 조건으로 루프트한자에서 1급 의료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다음 해에는 faa로부터도 우울증 증상이 다시 발견된다면 즉시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의료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그런데 2014년 11월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야 문제를 호소하기 시작했고 수면 장애가 생겼다. 루비츠 부기장은 여러 차례 의사와 만났고 병가를 사용했다.
 


 
졸피뎀, 조피클론 등등의 약물도 처방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우울증을 다시 앓기 시작했으며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루비츠 본인도 자신의 우울증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를 진료한 의사는 여러 심리, 정신적 치료를 권했으며 그 스스로도 더 많은 약을 처방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수사관은 세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의 우울증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을 수 있다는 것과, 우울증을 보고하면서 생길 경제적인 타격, 그리고 조종사로써의 자존감에 생길 상처였다. 
 
 
 
 


 
 
조종사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검사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결국 그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항공 당국은 조종사 스스로 문제를 보고하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당장 루비츠의 고의추락도 의료 검사 기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과거에는 조종사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생겼고나 어떤 약을 복용한단 사실을 보고하면 이 조종사가 사고를 치지 않을 것이란 의사의 소견서가 없는 한 조종사의 비행을 금지시켰다.
 
그런데 90년대에 충격적인 소식이 발표된다. 조종사들에게 의료적인 조언을 제공해주는 AMaS란 단체에서,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우울증을 앓는 조종사와 1,200건의 통화를 진행했으며 그 중 60%는 약을 먹지 않거 병을 숨긴 채 비행하기로 했고, 15%는 몰래 치료를 진행하며 비행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25%는 비행을 멈추고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안전을 위한 규제가 오히려 조종사가 병을 방치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조사로 인해 2000년대부터 조종사가 치료를 받거나 약을 복용하더라도 비행을 허가해주는 식으로 규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비츠의 경우엔 자신의 병을 보고하면 다시는 비행을 하지 못 할 상황이였기에, 병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 규제 당국은 끔찍한 비판에 직면했다. 바로 2년 전에 똑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29일 나미비아에서 LAM 470편의 기장이 비행기를 고의적으로 추락시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해 33명이 죽었고 조종사의 정신건강에 대해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고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 했다. 사고 보고서에서는 조종석에 2인이 의무적으로 있어야 하도록 규정을 변경하라고 권고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소형 항공사에게 일어난 작은 사고 따위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의 실책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처럼, 규제 당국은 많은 규정을 만들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종실 내 '2인' 규칙이다. 앞으로 조종사가 조종석을 나가게 된다면 훈련받은 승무원 한 명이, 그게 쉬고 있던 조종사던 훈련받은 승무원이던, 대신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정을 위해 사전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를 미리 실시했던 몇몇 항공사들의 사례를 확인한 결과 이 규칙이 가져올 또다른 위험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만 유럽의 EASA에선 이 규칙에 대한 권고를 2016년에 철회했고 2017년에 저먼윙즈는 2인 규칙을 폐지했다. 
 
 


 
조종사들의 정신건강을 파악할 항공 의료 기관에도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조종사들과 면담하며 그들의 상태를 파악할 전문가들의 역량을 개선하였고, 조종사 검사 방식도 개선되었다. 조종사들의 치료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개설되었다.
 
 
 


 
병을 앓는 조종사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들, 메이데이 재단이나 프로젝트 윙맨같은 곳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권고했다. 
 
 
 


 
조종사는 단순히 사람들을 옮기는 것에서 그들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30분의 짧은 비행에서 18시간이나 걸리는 긴 비행까지, 조종사들은 승갹과 비행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이런 중요한 의무를 지닌 만큼, 조종사들에 대한 자격 검증과 지원은 끝없이,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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