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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회 그리고 역사

마오쩌둥과 대약진운동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소수의견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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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문화대혁명을 설명할려고 했으나,

 

문화대혁명 이전에 대약진 운동을 먼저 설명해야

 

다음에 일어난 문화대혁명을 설명할 수 있겠다고 봐서

 

마오쩌둥(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을 설명할려고한다.

 

뭐 마오쩌둥과 중국이 그렇듯이 말만 그럴듯한 뻘짓이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야심차게 열의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부흥운동으로 결론은 대실패로 끝나서 대기근과 문화대혁명의 발판?이 되어버린 일이다. 그 유명한 토법고로와 제사해 운동은 대약진 운동의 하부 카테고리로 보면 된다.

소련이 옥수수로 도배를 하며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겠다고 하자 중국이 경쟁심을 느끼고 소련과 마찬가지로 농공업의 대증산 계획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작했다. 왜 옥수수였는지는 위의 링크를 참고

"영국은 철강을 연간 2천만 톤 생산하고 있다. 15년 후 영국의 생산량은 3천만 톤까지 늘어날지 모른다. 중국은 어떻게 될까? 15년 후 중국은 철강 4천만 톤을 생산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영국의 생산량을 초월하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강철 520만톤을 생산했고, 5년 뒤에는 천만~천5백만 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이 더 지나면 2천~2천5백만 톤을, 다시 5년 뒤에는 3천~4천만 톤을 달성할 것이다. 내가 허풍을 떠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장래 또 다른 국제 모임에서 만났을 때 여러분은 내가 너무 주관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상당한 증거를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다. (…) 니키타 흐루쇼프 동지는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15년 안으로 우리 또한 영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약진 운동을 선포하는 마오쩌둥의 교시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
 
 
영국이 1차, 2차세계전을 거치면서 많이 쇠락했다고해도 강대국인것은 변함없는데,
 
한순간에 영국을 따라 잡겠다고 허풍을 떠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뻘짓을 추친하기 시작하는데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다.
 
 
일단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국민당을 성공적으로 몰아내고 전국민의 0.1~0.3%를 숙청해서 정권장악을 성공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정책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 결과 공산당이 장악한 첫 몇년동안 중국 전체 생산량은 국민당 시절보다 30%감소한 상태였다.
 
어떤 뻘짓 거리를 했는지 알아보자
 
 

1. 농업집단화

 

마오쩌둥은 소련식 집단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Commune 협동농장으로 전국민을 개편한다.

 

인구이동을 법적으로 금지하며, 사유재산은 곧 자본주의로 연결되기 때문에 음식조차 집에 저장하는 것은 처형이다.

 

식당, 사원 도관등을 모두 폐쇄 시켜버리고 공용 급식소로 개편했고 숫가락과 철로된 식기 농기구들을 모조리 수거한다.

 

 

그리고 이렇게 운영된 급식소는 비효율의 극치를 달렸으며,

 

운영하는 사람은 내것도 아니니 퍼주다가 음식을 버렸고 나중에는 식자제가 바닥나서 제공할 음식이 없었다. 

 

거기에 감독하는 사람도 허술했기에 개인이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받아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내 공용급식소가 망해버리자, 다시 개인 취식을 해야하는데 음식은 커녕 취사도구도 다 챙겨가서 솥부터 구해야하는 형편이다.

 

 

2. 토법고로

 

"이처럼 작은 뒤뜰 용광로에서 이렇게 많은 철을 생산할 수 있는데 왜 외국인들은 거대한 제련소를 건설하지? 참으로 한심하군!"

엄청난 양의 철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흡족해한 마오쩌둥이 수행원에게 한 말.
 
마오쩌둥은 "매 집앞마다 뒤뜰에 토법고로를 지어서 대규모의 용광로가 없어도 강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공산주의국가의 특성상 지역마다 경쟁이 붙었으며 지방에서는 허위보고와 과장을 위해서 멀쩡한 물건을 철로 녹여서 엉터리 생산량을 보고 했다.

 

거기에 토법고로에 쓸 연료를 위해서 주변 산들을 모조리 베어버려서 민둥산을 만들어 버렸고

 

작은 뒤뜰 용광로에서 질좋은 철이 나온다는것이 넌센스이다. 한마디로 저품질 똥철생산량을 잔뜩 만들었다.

 

멀쩡한 물건을 철로 녹였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멀쩡한 식기와 농기구가 철로 탈바꿈 되었다.

 

철을 가지고 식기구와 농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본말전도된 사태였다.

 

그리고 민둥산 덕분에 대규모의 홍수와 산사태는 덤

 

 

3. 제사해 운동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싶은데,

 

참새를 해로운 새라고 잡아 들이고, 그 덕분에 병충해는 천적이 없어서 마음껏 번식해서 대기근을 만들고

 

결국 소련으로부터 참새를 수입해온 코미디가 벌어진다.

 

여기서 사해란 뜻은 참새,쥐,모기,파리를 말하는 것인데, 다른거는 실패해도 참새 퇴치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

 

*2억마리의 참새가 희생 되었다고 한다. 불상한 참새찡....

 

 

4. 벼를 빽빽하게 심기

 

 

 

"작물은 다른 동무와 함께 잘 자라며, 함께 성장하면서 더 편안할 것이다."

빽빽하게 벼 심기를 장려하는 마오쩌둥의 발언.
 
 
벼를 1개보다 2개심으면 많이 자라겠지? 라는 발상에서 나온것이며, 이게 전부다. 그냥 많이 심자는거다.
 
그리고 이 생각은 칼텍에서 항공공학과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칼텍 교수를 역임 초음속 비행체 및 유도탄 기술로 학위를 얻은 천제 공학자 첸쉐썬 박사의 아이디어이다.
 
첸쉐썬 박사는 생산량증분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마오쩌둥에게 보고서를 보냈고,
 
마오쩌둥은 신묘한 계책이라면서 그대로 이론을 실천해버린다.
 
그리고 빽빽하게 심은 벼는 다른 벼와 광합성 경쟁을 하면서 낟알을 줄이고 잎의 크기를 늘렸다.
 
오히려 10개 제대로 심는것보다 20개 빽빽하게 심는게 생산량이 떨어진것이다.
 
그리고 벼끼리 성장을 방해하면서 병충해가 일어나기 좋아졌다.
 
당연히 농업이 폭망했다.
 
 
*근데 첸쉐썬 박사는 농업 폭망의 원인과는 별개로 중국의 핵폭탄, 미사일, 인공위성 개발에 큰 공헌을 한다.
 
 
이것 말고도 사람들이 죽어가든 말든 대규모 토목산업, 치수산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여러 뻘짓거리를 한다.
 
 

 

 
"진시황은 우리에게 크게 못 미친다. 지금 우리는 진시황 10명처럼 행동해왔다. 단언컨대 우리는 진시황보다 더 강하다. 진시황은 460명을 생매장했지만 우리는 4만 6천 명, 아니 460만 명은 매장할 수 있다."

-마오쩌둥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클래쓰가 어디 가지 않는다. 잔혹한 공포정치는 덤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었는데
 
여기에는 노인, 임산부, 어린아이, 병자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어린아이가 일을 하다가 불평을 하면 때려죽였고
 
임산부들역시 본보기를 보인다고 나체로 빙판으로 내몰거나 가족이 보는 앞에서 때려 죽였다.
 
일을 못하는 노인과 병자들은 보육원과 양로원으로 보내졌는데,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돈은 중간에 착복했기에
 
사실상 사형집행전 대기장 신세가 되었다
 
.
 

 

 
결말은 비참하고 비참했다.
 
벼를 빽빽하게 심고, 참새를 잡아들여서 병충해가 들끓었으며
 
농철생산을 위해서 멀쩡한 식기구와 농기구를 녹여버리고, 산사태와 홍수로 질병과 대기근이 퍼졌다.
 
사람들은 미쳐서 불만을 가진사람을 반동분자로 내몰며 길거리에서 모욕을 주며 처형하였다.
 
이런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대기근으로 연결되고
 
2차 세계대전 사망자와 비슷한 3천 ~ 5천 만명이 순식간에 죽는 사태가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사망자수를 200만명을 최대로 잡았으나, 중국 공안부 내부에서는 5500만명설이 돌았으며,
1979년 중국의 자체 조사결과로는 4300만 ~ 4600만명으로 나온다.
 

*히틀러의 홀러코스터는 1100만~1700만명정도이다.

 

뭐 늘 그렇듯이 놀라운 점은 중국이었으니 버텼지, 다른나라였으면 그냥 나라가 사라졌을 거다.

 

 

 

"중국인들은 모두 채식주의자들이에요."

1960년 에드거 스노우와의 인터뷰에서 마오쩌둥이 한 발언.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거를 모른다는것이다.
 
소련으로부터 차관과 기술지원의 대가를 농산물로로 주겠다고하자 소련도 농산물을 수입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받아 들였으며
 
중국은 대기근때문에 자국민이 먹을 식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면 때문에 강제로 공출해서 소련에다가 준다.....
 
그리고 위에스 말한 우리는 채식주의자들이라며, 고기 육류 수출을 박차를 가했고
 
인육을 먹거나 더 많은 사람이 아사하는 비참한 현실로 몰고 간다.
 
나중에 소련이 이를 알고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체면 때문에) 필요없다고 쿨하게 거절한다.....
 
?
 
아무튼 이번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중국 공산당 내부가 분열 되기 시작하였으며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국가 주석에 취임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수습에 나섰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소! 역사는 당신과 나를 심판할 거요. 심지어 식인 행위도 역사책에 남게 될 거요!"

1962년 8월, 류사오치.
 
 
류사오치는 마오쩌둥 면전에 대놓고 역사의 심판을 받을것이라는 폭언을 한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변졀자라는 의심을하는데다
 
자신의 계획을 끊임없이 비판하던 지식인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 문화대혁명이라는 2차전을 터트린다.
 
 
 
 
여담이지만 이때 당시 김일성도 중국을 방문했는데 대약진 운동을 듣고 뭐가 이상하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소규모로 실험을 했는데 폭망한거를 확인하고 시도조차 안한다.
 

황정엽 회고록에서 나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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