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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에세이

구소련 제도 COMMISSAR과 오늘날의 한국

by 소수의견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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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제도 COMMISSAR과 오늘날의 한국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레닌은 늘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군부가 통수를 때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다름아닌 레닌부터가 바로 무력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게다가 1917년에는 제정 러시아의 잔당들(백군: The White Movement)과의 소위 '러시아 내전(Russian Civil War)'이 발발했는데
 
도중에 레닌의 통수를 치고 백군에 붙을 소비에트측 장군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레닌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KGB의 전신이 되는) 비밀경찰 체카(Cheka)를 조직했지만
 
체카만으로는 군부의 감시까지는 힘들었다.
 
그래서 레닌은 궁리 끝에 체카와 군부를 잇는 일종의 감시역을 심기로 결심했다.
 
그게 바로 Commissar로 번역되는 (영어권에는 이런 단어 자체가 아예 없다) '정치국원'이라는 제도였다.
 
소비에트에서 처음 탄생한 제도였다.
 
 
*영어 공부할 떄 조심해야 할 점은 commissar는 공산권의 정치국원이라는 의미지만
 
commissary는 '정치국원제도'가 아니라 그냥 '매점'이라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군의 수직적 명령체계에 혹처럼 '정치국원'을 하나 더 달아놓는다는 의미이다.

서울시가 만든 근로자 이사제 같은 것과 비슷한 것이다. 조직 돌아가는 상황 좃도 모르는 병신에게 발언권을 주어 자기 끄나풀로 부리겠다는 소리.

정치국원 제도는 프로이센 시대의 참모 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참모와 달리 정치국원은 전쟁에 대한 기본 이해조차도 부족한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인 참모와 달리 정치국원의 목적은 오로지 군의 감시 및 당의 정치적 이익이었다.

정치국원은 당을 대표하여 파견와 있는 존재이므로 현장 지휘관으로서는 정치국원을 따돌리면 사실상 항명으로 간주되었다.

영화 Enemy At the Gates에서 조셉 피네스가 맡은 이 안경쓴 아재 '다닐로프'도 정치국원인데,

무식한 평민 출신의 스나이퍼 바실리(주드 로)가 다닐로프를 존니 떠받드는 거 보면 당시 소련에서의 정치국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장 지휘관과 정치국원의 알력다툼은 엄청나게 치열했다.
 
영화 '포화 속으로'를 보면 박무랑(차승원)과 정치국원이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고 결국에는 박무랑이 정치국원을 사살한다.
 
박무랑이 김일성에게 총애를 받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치국원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철저하게 군을 당의 통제 하에 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속한 명령체계가 생명인 군에서 일부러 명령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니 당연히 능률은 이미 멀리 사라졌다.
 
게다가 정치국원들 중에는 실전 경험이 부족했고 이론만 빠삭한 선비들이 많았다.
 
더구나 공부 많이 한 새끼들일수록 사람 목숨 가볍게 여긴다고 정치국원들은 무리한 작전을 재촉하곤 했다.
 
흐루시초프도 정치국원 출신인데 그가 직접 명령 내린 작전들 보면 이 양반도 사람 목숨 참 우습게 여겼다.
 
다만 흐루시초프는 용감하긴 했다. 
 
정치국원 자리가 사람을 키우는 역할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물론 책상물림을 전쟁을 경험한 인재로 키우는데 드는 인명 희생이 너무 커서 문제였지.
 

 
 


정치국원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장 사령관의 결정을 존중하면 그 군대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군 지휘관 류보청과 정치국원 덩샤오핑의 관계였다.

덩샤오핑은 류보청을 매우 존중했고 류보청의 지략을 자주 벤치마킹했는데 우리가 덩샤오핑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흑묘백묘론"도 실은 류보청이 한 말이었다.

류보청은 "얼룩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많이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아니냐"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이론파였던 덩샤오핑은 류보청의 실용주의 노선에 큰 영향을 받고 실용주의로 돌아선다.

덩과 류의 우정은 문화대혁명 이후로도 계속 되었고 류보청은 덩샤오핑의 군 개혁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생산적인 관계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정치국원과 현장 사령관의 사이가 나쁠 경우, 군대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이 부작용은 나치독일의 소련 침공 초기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련의 (대숙청을 피해 살아남은) 장성들은 정치국원들에게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고 독일군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으니까.

한심한 사실은, 나중에는 나치 독일도 정치국원 비슷한 친위대 장교들을 파견하여 군 장성들을 감시했다.

독일이 승승장구할 떄에는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에 맡겼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간섭이 심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권력 유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던 Commissar 제도는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무능한 인물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권력을 주고, 조직의 능률을 낮출 뿐인 Commissar 제도는 폐지되었다.

 

당연한 역사의 흐름이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나대면 그 조직은 붕괴한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조직에 적용된다.

아마 대기업에서 근무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현장에 대해 좃도 모르는 낙하산 새끼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알고 지껄여 씨발놈아"하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그 기분.

 

 

 

 

 

그런데 공산권에서 탄생하고 공산권에서 사라진 제도가 한국에서 부활했다.

바로 인권위, 그리고 성평등 감시위원이다.

조직에 대한 이해도 없으면서 참견하고 별지랄한다.


한국은 인권위, 여가부가 정치국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국원 역할을 맡는 년놈들의 사회생활 능력 자체도 후달린다.
숲을 볼 능력이 없고 자기가 찾는 나무만 보는 년놈들이고 그런 년놈들이 하는 짓이라곤 "강간 피해자는 팽개쳐놓고 강간범의 인권만 챙기는" 것이다.

공산당이 정치국원을 활용한 것처럼
문재인 정권도 여가부를 활용하여 (성평등이라는 허울좋은 구실 아래) 공권력을 감시하고 있다.

앞으로 정치권에 목소리를 낼 때, 여가부 폐지는 반드시 내세워야 한다.
이제부터는 대한민국 vs 여가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줄요약


1. 1917년 볼셰비키가 정치국원 제도를 만들어냄.


2. 현장을 모르는 씹병신들이 조직을 들었다 놓곤 했는데 결국 공산권 붕괴와 함꼐 사라짐.


3.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한국에 여가부라는 쓰레기 조직으로 부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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