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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에세이

가이낙스(GAINAX)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소수의견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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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회사의 핵심 인력들이 퇴사를 선언한다.  

회사이름이 주는 부담감에서 탈피해보자 몇몇 마음맞는 멤버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오타쿠 문화를 만든 '가이낙스'의 이야기다.

 

 

 

80년대 애니를 만들기위해 오타쿠들이 모여 회사를 창업한다. 

어디까지나 프로젝트성 회사로 애니를 제작만 하고 해산할 목적이였지만  

제작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헤아릴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빚 

하지만 오타쿠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빚이 있으면 빚을 갚을 때까지 계속해서 애니를 만들면 되잖아?  


이것이 가이낙스의 시작이였다.

 

 

 

 

70만엔의 월세의 100평 사무실에서  


16평짜리 사무실로 이사했고 , 항상  빚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 

잉크가 없어 펜을 부숴 잉크를 구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16평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작업하고 사무실에서 다같이 잠을 잤다. 

  
그래도 오타쿠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하지만 상황은 더욱 더 비참해져만 갔다. 일감은 점점 줄어가고  

하청의 하청을 맡게 될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됐다. 

심지어는 열악한 환경에 제작기간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라  

빚은 더더욱 쌓여만 갔다. 그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꿈과 현실의 괴리에 한 오타쿠는 분노했다.  

"우리의 왕립우주군 같은 작품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들은 미소녀,패러디,대리만족에 집착한다."  

이 말을 잠자코 듣던 사장 오카타 토시오가 그에게 말 했다.  






"그럼 네가 그렇게 만들어 보지?" 

 

 

 

 

 

연출가 안노의 주도하에 오타쿠적인 요소를 적재적소에 넣은 

'톱을노려라'가 흥행하게 된다. 

애니는 빚을 다 갚을 정도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가이낙스의 이름과 감독 안노 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톱을 노려라의 성공을 지켜보던 아카이 타카미는  

비슷한 성향의 게임을 세상에 내놓는데  

이것이 바로 '프린세스 메이커'다.

 

 

 

 

프린세스메이커를 비롯한 게임부의 성과는 뛰어났다. 

가이낙스의 부채는 순식간에 줄어나갔고  

톱을 노려라의 안노, 프린세스 메이커의 타카미 이 둘의 활약으로  

가이낙스는 천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노는 이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자금이 여유로워 지자 회사는 왕립우주군 후속작을 기획했다. 

하지만 예산이 오바되어 기획이 취소되면서 공백이 생겼다. 

이 때 안노는 꼬깃꼬깃 접혀진 제법 오래되보이는 종이를 들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승인이 나기까지 4년 작업실 생활  

그 중 반인 2년 무보수 생활을 거쳤다. 4년간 손대지 못한 채  

그냥 도망다니기만 했다. 그러나 '도망가면 안돼!'라는 생각이  

작품을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자기의 생각을 필름에 정착시키고 싶다는  

느낌이 든 작품이다. 이것이 무모한 자만이자 고란한 행위라는건 안다. 그러나 선택했고 

결과는 알 수 없다. 아직 내 안에서 작품은 숨을 거두지 않았다.

 

 

 

 

 

신지란 이름은 친구로부터, 미사토는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에서,  

리츠코는 중학생 시절 친구로부터 그 이름을 따왔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졌을 것 같은 이름들도 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란, 변화하는 것' 이라고들 한다. 

나는 이 작품이 결말을 맞이할 때 세계도, 그들도 변화해 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진솔한 마음이다. 



- 안노 히데야키 -

 

 

 

 

 

이렇게 만들어진 에반게리온은 2007년까지 95년부터 12년동안 1조 5천억원을 벌어들인다. 
  
  
평균 판매량이 무려 17만장 역대 1위 이 기록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에반게리온이 일본을 넘어 전세계 오타쿠들에게 끼친 전후무후한 영향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자에상, 마루코는 아홉살, 도라에몽 이 일본 전 국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에반게리온은 전세계 오타쿠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은 그야 말로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열었다. 

 

 

 

 

 

 

에반게리온이 만들어지고 세상엔 오타쿠라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누군가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오타쿠가 된 사람들이 마침내  

누군가를 오타쿠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가이낙스는 이들을 기반으로 극장판, 신 시리즈를 내놓는다. 

이는 차례차례 성공을 거두고 마침내 회사 존립의 이유였던  

빚더미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프리크리 

 

 

 

 

가이낙스는 멈추지 않았고 

 

 

 

 

이러한 열정에 왕립우주군의 감독이 가이낙스에 복귀  


마호로매틱을 만들어 낸다. 

 

 

 

 

 

 

가이낙스다운 패러디가 가득한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 프린세스 메이커의 쁘디프리 유시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 톱을 노려라! 의 후속편 까지  

가이낙스는 전에 없던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반게리온의 안노가 독립을 선언한다.  

잘나가던 가이낙스는 안노와 함께 수많은 인력을 놓아줄수 밖에 없었고,  

가이낙스는 긴 공백기에 접어든다. 

 

 

 

 

 

 

그때  

 16평의 사무실, 4년간의 사무실생활 , 그 중 2년간의 무보수 생활  

이 모든것을 지켜본 이들, 에반게리온의 애니메이터들이자 안노의 뒤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던 신예감독들은 결심했다.  

"그래, 이것이 가이낙스다 , 또 이것이 가이낙스다, 그리고 이게 바로 가이낙스다"

 

 

 

 

 

 

권당 2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고있는 그레라간이 만들어졌다. 안노와 비슷한 메카 애니메이션이며  

다른 점을 꼽자면 에반게리온은 염세적인 분위기였고 그레라간은 열혈적인 분위기였다. 



열혈,  신 가이낙스의 탄생이였다.

 

 

 

 

신 가이낙스는 날개를 펼쳤다. 

 

 

 

 

 

시희, 하나마루 유치원  빠른 전개와 놀라운 연출력 , 독특한 센스 

 

 

 

 

 

그리고 이는 팬스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이낙스는 영원히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러나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서 
  

  
때는 마침내 2011년 8월 신 가이낙스의 핵심인력들이  

퇴사를 선언한다. 에반게리온의 안노가 그랬던 것 처럼  

그레라간의 가이낙스들은 '트리거'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한다.

 

 

 

 

 

 

하지만 가이낙스는 잡지 않았다.  안노가 나갔을 때 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이낙스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제각각 정체성이 있죠 역시 그게 작품에 묻어나오고요 

 

 

 

 

 

쿄애니의 경우는 작화, 샤프트는 연출력 ,선라이즈는 스토리 일테죠 

 

 

 

 

 

그리고 가이낙스의 경우에는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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