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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회 그리고 역사

자아 혁신과 민족개조 안창호

by 소수의견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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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혁신과 민족개조 안창호

 

 

 

유럽대전이 휴전되자 이곳에서 기하지 않고 이와 같이 일석에 상면을 얻게 됨을 무한히 기뻐하는 바입니다.

우리 민족의 수는 2천만, 우리 민족의 역사는 4천 년, 국토는 3천리,

전 세계의 국별로 비해 본다면 적은 수도 아니요, 적은 국토도 아닙니다.

역사로는 동양에서 제2입니다. 이런 오랜 역사에는 찬란한 페이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경술국치로 금일이 비참한 환경 속에서 신음하게 된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고요한 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우선 이조 5백 년 역사는 당파싸움의 역사입니다.

나라 일을 위하여서 하는 당파 싸움이면 나라가 망할 수 없겠지요 마는 당파만을 위하려는

사리사욕뿐이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요, 정권을 탐내는 목적이 적의 당파를

섬멸하고 국가를 당파의 낭중물로 만들려고 하는 데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조 초기에는 불교에 대한 유교의 파쟁이니 이것은 세종․세조에 격렬하다가 중종․명종에 이르러

유교의 독단으로 끝을 맺고, 이 파쟁으로 약해진 조정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유치하였고 중종 때부터 이른바 사화란 것으로 발단한 같은 유교끼리도

동서․노소․남북의 추한 투쟁은 이씨 5백 년을 끝막아버리고 말았소.

그들은 오직 당쟁에만 눈이 벌개서 교육도 산업도 치천치수도 다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적을 죽이고 저를 보전하기에만 전력하였소.

대신은 이름만 대신이지 대신 자리에서 나라 일은 생각하지 않고 국가와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만 하였으니, '然而코 不亡者未之有地'가 아니고 무엇이리오.

이조 말 갑신에는 김옥균 등의 독립당과 민씨족의 사대당이 싸웠고 또 청․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청파, 노․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러파의 당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한 이조 5백 년 역사는 공담공론의 역사이었습니다.

입으로는 수신제가라야 치국평천하라는 등 허장허세의 호언장담으로 천하영웅같이

생각하고 공담공론이 수종되는 부산물은 오직 쟁론과 모해밖에 없었습니다.

실천 없는 이론은 먹을 수 없는 식량과 같습니다.

우리는 5백년래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말만하고 그 일을 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마치 소에게 무엇을 먹여야 가장 좋다는 토론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소를 굶겨 죽였습니다.

풀 한짐 베어다가 먹이는 것이 백 가지 이론보다 나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독립운동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남을 비판하기만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식(飾)하고 타인에게는 책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니까, 책임이 없습니다.

또 제게는 잘못이 있더라도 꾸며버립니다.

남은 애써 했더라도 왜 더 잘못하였느냐고 그렇게 해서 쓰겠느냐고 가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과는 다 무슨 일을 한다는 남들에게 있다고

보고 저는 권외에서 험담이나 하는 사람으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백 년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위대한 유산이 적고 오직 갑론을박 뿐으

로 협조를 모르고 음해 뿐이요, 찬양을 모르고 회손 뿐이요, 동족상잔, 골육상쟁 즐비한 기록이 있

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렇다 할 건물이나 토목공사 하나 크게 자랑할 것이 없지 아니합니까?

그리고 우리 2천만 동포는 거의 책임을 모르고 저의 입장을 망각하는 데 큰 고통 거리입니다.

여러분, 망국의 책임자는 누구요? 언필칭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을 이완용․이용구라고 하지요.

우리 2천만 대한민국 속에는 너나 죄다 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완용․이용구로 하여금 나라를 팔게 한 것이 우리 국민이니 나를 뺀 국민이 어디 있소.

그런데 우리는 일본을 원망하고 이완용을 원망하고, 우리 국민이 무기력함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우리 조상을 원망하고 선배를 원망하였으나 일찍이 한번도 나 자신을 원망한 일은 없었소.

마치 망국의 모든 죄는 다 남에게 있고 나 하나만이 무죄한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책임전가가 아니고 무엇이오.

가령 어떤 집이 하나 있고 그 집주인도 있고 나그네나 고용인이 있다고

하면 그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주인은 그 집이 제 집이므로 그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 힘 쓸 것이요, 나그네나

고용인은 그것이 제 집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편안한 것만 생각하지 그 집 생각은 아니할 것이오.

묻노니, 우리 2천만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이가 많은가요?

제 집을 아끼고 사랑하듯이 제 나라를 위하여서 정성과 힘을 다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우리 민족 중에는 주인이 극히 많다고 생각하오.

이완용은 3천리를 제집으로 생각하고 그 천 만대 후손을 제 식구로 생각하였을까요?

이완용은 제가 한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제가 주인이라고 생각하였던들 이완용은 결코 합병조약에

도장을 아니 찍었을 것이요, 만일 일본인이 이완용의 가대와

전토와 자녀를 일본인에게 바치는 도장을 찍어라 하였다면 아마

그는 죽어도 아니 찍었을 것이오. 그는 아마 대한 황제의 나라, 또

2천만 민족의 나라를 팔아서 제집 하나만은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였기

때문에 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었다고 생각하오. 마치 고용인이 주인집 가산을

팔아서 제 재산을 만드는 심리와 같은 심리라고 생각하오.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이 이완용 하나뿐일까요?

나라를 제것으로 알고 제 나라의 주인으로 알지 아니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완용 모양으로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나요?

나는 적은 규모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은 말마다 수없이 있다고 생각하오.

예를 들면 상해 가두에서 중국인 인력거에게 차세를 적게 주어

하인을 원망케 하는 것도 매국적이라고 생각하오.

그는 한인 전체를 미워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나라의 주인은 누구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인은 누구요?

대통령, 대통령의 주인은 누구요?

대한민국, 우리 2천만 민족, 대한민국 우리 2천만 민족은 누구요? 우리들 모두, 우리들 모두란 누구요?

'대한민국아 나서라'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면 '네'하고 나갈 자가 누구요?

나는 나 안창호라고 대답할 것이오. 여러분도 각자 '나외다, 나외다' 할

것이니 우리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저마다 다 대한민국이요,

저마다 대한의 국민이요, 대한민국 정부의 주인이오.

대통령은 우리가 뽑아서 우리의 대표로 우리의 지도자로 내세웠고 우리는 그에게 이러한 법률에

의하여 이러한 일을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는 그리하마 하고 약속하였소. 그 '우리'라는

것은 곧 나요, '우리'라는 말이 심히 좋은 말이거니와 이 말은 책임전가나 책임회피에

이용하는 것은 비천한 일이오. 책임에 대하여서는 내 것이라 하고 영광에 대하여서는

우리 것이다 하는 것이 도덕에 맞는 언행이라고 하고, 그러면 대통령은 우리의 법과

우리의 여론에 복종하고 나는 대통령의 명령과 지도에 복종하고. 우리라 할 적에

'우리'는 대통령보다 높고, 나일 적에 '나'는 대통령보다 낮다고 생각하오.

우리 대통령으로는 우리가 감사하고 내 대통령으로는 내가 경애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금일 경술국치에 대하여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오.

그러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요?

그것은 다 나 자신이요,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조아를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매국을 허용하였으니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요

우리 민족 각자가 한국은 내 것이요, 한국을 망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는 것이 내게 달렸다고 자각하

는 때에 비로소 민족 부흥의 여명이 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국치의 금일,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로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아 나 때문이로군 하고 왜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고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현재 전 세계에서 영․미인이 가장 우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거니와 이 우월한 국민성은 교양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세상 만사 우주의 모든 현상은 다 정확한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영․미인이 탁월한 지위를 가진 것이고 우리 민족이 빈천한 처지에 있는

것이나 다 인과관계지 결코 우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사는 남과 못 사는 우리를 비교하면 우리의 진로가 분명해

지리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우리 동포들은 자연계의 인과는 아니 믿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인사의 인과는 잘 믿지 아니하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가령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고 또 거름을 준 벼는 아니 준 벼보다 많이 나고, 김을

세 번 맨 논은 두 번 맨 데보다 소출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믿으면서도 남은 잘 사는데

저는 못사는 것 같은 그러한 원인에서 오는 필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운수니 요행이니 하여 남이 잘된 것은 요행, 제가 못된 것은 불운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인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과를 믿는 사람의 특색은 첫째로 제가 당하는 일의 책임이 제게 있다고 아니 하고 혹은 세상에

원망을 돌리는 것이오, 인과(因果)를 만든 사람의 특색은 제가 받는 것은 다 제가 지은 일의

필연의 값이요, 갚음이라고 알기 때문에 제게 불행이 있을 때에는 제 마음과 제 행실을

반성하고 검토하여서 지금 받은 불행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내면서 그것을

고치거나 제외하기를 힘쓴 것입니다.

이에 나는 자아 혁신과 민족 개조를 부르짖습니다.

진정한 민족 향상은 우선 지도자층의 각원의 자기 개조가 아니고는 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 망국한 민족이 그대로 흥국하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러진

집에 썩은 재목으로 새집을 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한 번 쇠하기 시작한 민족은 부흥의

고개로 거슬러 오름이 없이 멸망의 구렁으로 굴러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현재 상태로는 비약의 가망이 묘연하니 무엇보다 민족 혁신 운동이 시급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민족은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저 영․미 국민 만한 정도로

끌어올려야 우리나라가 영․미만한 나라가 될 것이니 민족의 역량은 오만한 채로 국가의

영관은 저만치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여서라도, 그야말로 무슨 짓을 하여서라도 우리 민족의

품격과 역량의 향상을 도모하여야 하겠고 또한 시급히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우선 상해에 있는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일류 인사들로부터 사정없이 냉혹하고 늠렬하게 자기를

양심의 법정에 피고로 내세워서 반성하고 비판하여 자아혁신의 '본보기'가 되어 재출발합시다.

그러므로 한낱 나 사람이 성(誠)의 인(人)이 되는 것만으로 벌써 민족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면 진정한 애국자일진대 먼저 저를 수련하여 지성의 인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제가 지성의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는 다만 구설과 교지를

능하는 것은 결코 국가 민족을 위하는 소위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취제가 의술을 학습하지 아니하고 중생의 병을 고치려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애국자가 적지 아니합니다. 그리하여 최후 결론을 이렇게 외칩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하거든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중생의 질고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가 되기까지는 못 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명언은, 어느 시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것 같다.

 

지금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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