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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회 그리고 역사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연설

by 소수의견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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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전 이승만의 연설

 

 
 
나는 이승만 입니다
 
미국 와싱턴에서 해내·해외 산자한 우리 2300만 동포에게 말합니다
 
어디서든지 내말 듣는이는 자세히 들으시오
 
들으면 아시려니와, 내가 말하는것은 제일 긴요하고 제일 기쁜 소식입니다
 
자세히 들어서 다른 동포에게 일일이 전하시오
 
또 다른 동포를 시켜서 모든 동포에게 다 알게하시오
 
나 이승만이 지금 말하는것은 우리 2300만의 생명의 소식이요, 자유의 소식입니다
 
저 포악무도한 왜적의 철망철사중에서 호흡을 자유로 못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 자유의 소식을 일일이 전하시오
 
감옥 철창에서 백당학형과 학대를 받는 우리 조선남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시오
 
독립의 소식이니 곧 생명의 소식입니다
 
왜적이 저희 멸망을 재촉하느라고 미국의 준비없는것을 이용해서 하와이와 필리핀을 일시에 침략하야
 
여러 전명의 인명을 살해한것을 미국 정부와 백성이 잊지 아니하고 보복할 결심입니다
 
아직은 미국이 몇가지 관계로하야 대병(大兵)을 동(動)하지 아니하였음에 왜적이 양양자득하야 온 세상이
 
다 저희것으로 알지만은 얼마 아니해서 벼락불이 쏟아질 것이니 일왕 히로히토의 멸망이 멀지 아니한것을
 
세상이 다 아는것입니다
 
우리 임시정부는 중국 중경에서 애국열사 김구, 이시영, 조완구, 조소한, ~ 씨가 합심행정하여 가는 중이며
 
우리 광복군은 이청 전 김약단, 유동렬, 조성한 여러 장군의 지휘하에서 총 사령부를 세우고
 
각방으로 왜적을 항거하는 중이니, 중국 총 사령관 장개석 장군과 그 부인의 원조로
 
군비·군물을 지배하며 정식으로 승인하야
 
완전한 독립국 군대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과 하와이와 멕시코와 쿠바의 각지에 우리동포가
 
재정을 연속 부송하는 중이며, 따라서 군비·군물의 거대한 후원을
 
연속히 보내게 되리니
 
우리 광복군의 수요가 날로 늘것이며, 우리 군대의 용기가 날로 자랄것입니다
 
고진감래가 쉬지아니 하나니 37년을 남의나라 영지에서 숨겨서 근거를 삼고 헐고 주리며
 
원수를 대적하던 우리 독립군이 지금은 중국과 연미국의 당당한 연맹군으로 왜적을 타파할
 
기회를 가졌으니, 우리 군인의 의기와 용맹을 세계에 드러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 할것이 이 기회에 있다 합니다
 
우리 내지와 일본과 만주와 중국와 서백야 각 처에있는 동포들은 각각 행할 직책이 있으니 왜적의 군기창을 낱낱이 타파하시오
 
왜적의 선로는 일일이 파상하시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왜적을 없애야만 할 것입니다
 
이순신, 임경협, 김동영 등 우리 역사의 역렬한 명장이사들의 공훈으로 강포무도한 왜적을 타파하야
 
저 섬속에 몰아넌것이 역사에 한 두번이 아니었나니
 
우리 민족의 용기를 발휘하는 날은 지금도 또 다시 이와같이 할 수 있을것입니다
 
내지에서는 아직 비밀이 준비하야 숨겨두었다가 내외의 준비가 다 되는 날에는
 
우리가 여기서 공포할 거이니 그 때는 일시에 일어나서 우리 금수강산에 발 붙이고 있는 왜적을 일제이 함몰하고야 말 것입니다
 
내가 와싱턴에서 몇몇 동포와 미국 친우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정부와 교섭하는 중이메
 
우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을날이 가까워 옵니다
 
승인을 얻는대로 군비·군물의 후원을 얻을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희망을 가지고 이 소식을 전하니
 
이것이 즉 자유의 소식입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씨에 선언과 같이 우리의 목적은 왜적을 파한후에야 말것입니다
 
우리는 백배나 용기를 내야 우리 민족성을 세계에 한번 표시하기로 결심합시다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빛이나니 일심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이 말을 잊지말고 전파하며 준행하시오
 
이후에 또다시 말할기회가 있으려니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할것이
 
이 때 우리손에 달렸으니..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 만대에 자유기초를 회복 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300만 동포여

 

 

 

 

 

 

 

 

 

 

 

 

 

 

 

 

 

 

 

 

 

 

 

전영기 논설위원 JTBC 뉴스9 앵커
 
6·25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됐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해 10월 1일 조인됐습니다. 정전협정은 63개 항목으로 이뤄졌습니다. 제60항은 정전(停戰) 3개월 이내에 미국+북한+중국이 정치회담을 열어 ‘한국에서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문제를 협의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협정 문안대로 일이 진행됐다면 53년 10월 말 미군은 한국에서 모두 떠났을지 모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으로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전이었습니다.
 
 김일성은 미군 없는 한국군쯤은 언제라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3만7000명의 미군이 사망한 이 땅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요. 미군 철수라는 점에선 김일성과 아이젠하워의 이해관계가 기묘하게 일치한 셈이죠. 정전협상은 이런 이해관계 위에서 진행됐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을 상대로 대담한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는 정전협상을 줄기차게 반대했습니다. 끝내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만일 이승만이 협정에 서명했다면 문제의 제60항 때문에 미군을 붙들어둘 명분을 잃었을 겁니다. 미국을 상대로 던진 절정의 승부수는 6월 18일 자정에 단행한 반공포로 석방 사건입니다. 미국+북한+중국 간 정전협상의 최대 쟁점이 포로 교환 문제였는데 이 지점에 폭탄을 터뜨린 겁니다. 이승만은 미군의 작전지휘권 바깥에 있는 한국의 헌병사령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국 헌병대는 포로수용소를 지키던 미군 초병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2만7000명을 탈출시켰습니다. 이 소식에 놀라 아침에 면도하던 처칠 영국 총리는 얼굴을 베었고,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은 곤히 잠자던 아이젠하워를 깨웠다는 그 사건입니다. 이승만은 한국의 단독 행동으로 얼마든지 정전체제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점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승만의 승부수는 자칫 자기 무덤을 팔 뻔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한국의 골칫덩어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쿠데타 계획을 검토했기 때문입니다. 1975년에 해제된 미국 정부 기밀문건에 따르면 “1953년 아이젠하워와 덜레스, 합참의 각 참모총장들은 이승만을 체포하고 남한을 다시 미 군정하에 두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 중이었다”고 써 있습니다(『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106쪽).
 
 당시 이승만에 대한 한국인의 지지는 절대적이었고, 군과 집권세력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쿠데타 계획은 대안세력이 없어 무산됐다고 합니다.
 대신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한·미동맹(同盟)을 맺기로 했습니다. 이승만도 아이젠하워에게 더 이상 정전협상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인된 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이죠. 이 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국에 계속 주둔하게 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 ①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②장기간 경제원조도 추가로 받아냈습니다.
 
 정전협정으로 미군 철수를 노렸던 김일성은 의표를 찔렸습니다. 이승만은 동맹조약을 맺음으로써 불안한 정전협정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정전으로 ‘전쟁 중단’은 얻었지만 동맹으로 ‘미군 발 빼기’엔 실패했습니다. 한국을 김일성 공산세력에 넘겨줄 수 없다는 이승만의 집념과 승부수는 통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유엔군 사령관인 클라크 장군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평화를 얻는 게 더 어려웠다. 적군보다 이승만 대통령이 더 힘들었다”고 했겠습니까.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북한은 정전 60주년을 자기들 말로 전승절이라고 부르더군요. 전승절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뜻인데,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국가가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은 동맹 60주년을 일부에서 무슨 자주성이 없는 사대주의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감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분명한 건 우리의 국가는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실패한 전체주의 국가와 성공한 민주 번영 국가의 출발은 김일성과 이승만에게서 갈렸습니다. 정전과 동맹의 60년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승만이 친미 사대주의자가 아니라 위대한 전략가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초대 정권 주요 인사만 보아도

 

이승만이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역사 인식이 없는지 스스로 무지한지를 까발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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