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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에세이

쿄애니(KYOTO ANIMATION)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소수의견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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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애니(KYOTO ANIMATION)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표작으로 한때 오리콘차트를 휩쓸었던 케이온 떠오른다.

 

 

 

 

 

일찍이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가 이뤄낸 몇가지 혁명적인 기술덕에

 

 일본의 애니산업은 유례없는 발전을 맛 보고 있었다.

 

 

 

 

오사무의 동료였던 핫타 요코는 동네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던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중

 

이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 수강생이였던 주부들을 데리고 회사를 창립한다.

 

 

 

 

 

시작은 미약했다. 애니메이션 회사라지만 돈이 몇 푼 되지않는 하청 작업들 뿐

 

보수는 점점 줄어갔고  일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분유값에 시달리던 직원, 부족한 임금에 아르바이트를 뛰던 직원..

 

 그렇게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에게 '기술'이 생기고 '인맥'이 생겼다.

 

회사는 하청업계의 스페셜리스트로 떠올랐다. 당시 했던 하청은

 

메이져가 된 지금도 하고있다.

 

 

 

 

 

2003년, 설립 20년이 지날 무렵에야 회사는 처음으로 원청애니를 내놓는다.

 

풀메탈패닉, 하청계의 스페셜리스트에서 '쿄 애니'로 바뀌는 순간 이였다.

 

 

 

 

 

 

쿄 애니의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뛰어난 연출 , 캐릭터성, 감동적인 스토리

 

 

그리고 무엇보다

 
 
 

 

 

20년간의 경험을 녹여낸 뛰어난 작화,

 

한 평론가는 쿄 애니를 이렇게 평가했다.

 

"여러분이 보는 건 극장판이 아닙니다, TVA 입니다.

 

하지만 쿄 애니의 경우는 저조차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차근차근 명성을 쌓아가는 쿄 애니는 쿄토대학 출신 엘리트에게

 

야심작의 연출을 맡긴다.

 

 

 

 

 

며칠 뒤 그가 각본을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황당한 건

 

각본이 뒤섞여있었다는 것.

 

"이보게 연출가 양반 왜 각본을 섞어서 들고오나?"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뒤섞인게 아닙니다."

 

 

애니는 메가톤 히트를 기록하고 그 해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거기서 그치지않고 문화청이 주관하는 100대 미디어 예술선에 올라서고

 

'하루히즘' 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더욱 잘 보이는 법

 

작화의 유지를 위해 애니메이터들의 개성억제와 속물적인 연출법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는 카논에서 절정을 이뤘다.

 

심지어 러키스타에서는 하루히의 연출가 야마모토 유타카를 해고하기 까지 이른다.

 

기라성같았던 쿄 애니의 명성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다.

 

 

 

 

극장판 퀄의 tva를 뽑는다는 말은 팬들과 함께 사라졌고

 

이제는 작화가 문제가 되기까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쿄 애니는 두가지 중요한 반응들을

 

포착한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년 전 그때처럼

 

 

 

 

바퀴벌레애니 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호평을 받은 클라나드

 

그리고 최루계라는 평을 들은 카논을 보며

 

'스토리'라는 부문에 쿄 애니는 주목하기 시작했다.

 

쿄 애니는 KA에스마 문고라는 자회사를 창간하여  라이트노벨 시장에 진출하고

 
 
 

 

 

 러키스타를 보면서는 캐릭터성의 힘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는

 

럭키스타와 마찬가지로 별 인기없는 4컷만화 원작을 찾아나선다.

 

 

 

 

동인출신 작가의 어설픈 스토리텔링과 오로지 캐릭터성에만 의존해서 전개하는

 

잡지 퇴출위기의 작품을 발견.

 

쿄애니는 과감하게 애니화를 결정한다.

 

하지만 수뇌부에서는 반발이 거셌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캐릭터성은 분명히 있으나 이는 너무나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러자 쿄 애니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두가지 자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자루와 불안이라는 자루

 

 

 

 

 그 중에서 우리는 전자를 택한 겁니다."

 
 
 

 

 

초동 3만 , 수십개의 앨범, 오리콘 1,2위 , 수천 수만의 캐릭터 상품

 

케이온 붐은 쿄애니 간판애니를 하루히에서 케이온으로 변환시켰다.

 

 

 

 

비단 상업적인 성공 뿐 아니라 그간 문제시 되어 왔던

 

쿄 애니의 '작화' 가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아니 말하자면 그 이상이였다.

 

케이온의 이런 '그림체 혁명'은 자사를 넘어서

 

수많은  애니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체는 쿄애니의 브랜드화가 되었다.

 

하지만 슬금슬금 작품성 논란이 불거졌는데

 

 

 

 

 

이는 빙과의 등장으로 사그라든다.

 

 

 

 

 

KA에스마 문고의 첫 출시작인 중2병과 프리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80년 주부들의 용돈벌이로 시작된 조그만 회사는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화만 내고 살아가기엔 너무도 짧은 이 삶에

 

 

 

 

편안한 안식처가

 

 

 

 

사랑을 찾는 이들에게는 기꺼이

 

 

 

 

사랑을 들려주었다.

 

 

 

 

사진은 진실입니다.

 

 

 

 

애니는 초당 20번의 진실이고

 

 

 

 

아직 업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보시나요? 얼굴? 몸매?

 

 



저는 그림체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스갯소리를

 

 

 

 

쿄애니는 현실로 만들었다.

 

 

+ 19년 7월 18일

갑작이 조회수가 늘어서 찾아보니

오늘 쿄애니메이션 본사에 동기불명의 테러로 인해서 최소 10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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