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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회 그리고 역사

중국의 3대 파벌에 대해 알아보자 3편

by 소수의견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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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주석은 마오저뚱-화궤평-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순으로 총 6명이 있었지만, 마오저뚱-덩샤오핑-시진핑 3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2. 마오저뚱이 중국대륙을 완전히 먹었지만, 투쟁만 하던 놈이라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대약진운동이라는 역사적인 뻘짓을 하게 됨. 

 

 

 

 

 

3. 마오저뚱이 참새를 곡식을 훔쳐가는 해로운 새라고 한다.  공산당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참새를 거의 전멸시킴. 참새가 사라지자 참새가 해충들을 잡아먹지 못해 병충해가 크게 발생해서 농사가 맛이 감.  

 

 

 

 

4. 마오저뚱이 철 생산량에서 영국을 뛰어 넘으라는 지시를 함. 당은 목표달성을 위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농기구까지 녹여 쓸모없는 철괴를 만듬. 철 생산량은 영국을 뛰어넘었지만 잘 사용하던 농기구가 쓸모없는 철덩어리가 된다. 

 

 

 

 

 

 

5. 이런 뻘짓이 누적되어 결국 3천만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이 온다.  

마오저뚱의  권위는 살아 있었지만 정책에 대한 의심이 대중들간에 생기기 시작함. 

 

 

 

 

 

6. 마오저뚱이 자기고향 후난성 출신인 화궈핑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음.

 

 

 

 

 

7. 화궈핑은 “양개범시”를 정치구호로 내세움. 두가지는 무조건 옳다라는 뜻으로 마오저뚱이 결정한 것과 지시한 것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임. 죽은 마오저뚱의 권위에 기대서 힘을 모으려 한 것이었다.

 

 

 

 

 

8. 하지만, 화귀핑은 혁명경험이 없는 신참이었음. 대장정,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혁명원로들 사이에서 화귀핑은 존재감 없는 어린 철부지 취급을 당한다.

 

 

 

 

 

9. 이때 덩샤오핑이 다른 정치구호를 들고나오는데. “실사구시”였다. 마오저뚱은 대체로 옳지만, 그의 말중 돈이 되는것만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뜻임.  마오저뚱의 권위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개혁개방을 암시하는 구호였다. 

 

 

 

 

 

10. 마오저뚱의 뻘짓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과 당원들은 

등샤오핑의 실사구시에 열광을 함.  결국 1978년 12월 22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등샤오핑이 권력을 이어받게 된다. 

 

 

 

 

 

11. 집권후 등샤오핑은 세가지 방향을 제시함. 선부론과 도광양회(韬光养晦), 집단지도체제임.  

 

 

 

 

 

12. 선부론,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들이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결국 전체가 다 잘 살것이라는 이론임.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자는 말이었고 이 이론에 따라 상하이등 해안도시들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함. 반면에 내륙지역은 발전에서 소외되어 양극화가 시작됨. 

 

 

 

 

 

13. 두번째 지시가 도광양회를 100년간 하라는 것임. 등샤오핑이 대빵이 되던 시기는 형제 공산국가인 소련이 맛이 가고, 미국이 세계의 원탑이 되는 때 였음.  도강양회,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르라는 뜻으로 미국, 일본등 자본주의 나라와 수교해서 그들의 자본과 기술로 성장하려는 전략이었다. 

 

 

 

 

 

14. 세번째가 정치영역으로 집단지도체제를 만든다. 7명으로 이루어진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합의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상무위원회에서 반드시 합의를 거치게 해서 권력을 7명으로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전편에 적어둔것처럼 나중에 파벌싸움으로 변질된다. 

 

 

 

 

 

15. 후계구도와 지도부 물갈이방식도 설계를 한다. 7상8하와 격대지정. 5년마다 열리는 상무위원회에 67세까지는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 부터는 진입도 못하고 기존 상무위원들도 은퇴를 해야한다는 원칙이 7상8하이다.

 

 

 

 

 

16. 격대지정. 차차기 후계자를 미리 지정해서 주석의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이 기준에 따라 차기 후계자로 장쩌민을, 차차기 후계자로 후진타오를 지명함. 까놓고 말해서 덩샤오핑이 디질때까지 권력을 잡고 상왕정치를 하겠다는 말이었음.  

 

 

 

 

 

17. 등샤오핑이 처음부터 후계자로 장쩌민을 민것은 아니다. 리핑이 후계구도에서 앞서가고 있었고 장쩌민은 지방인 상하이시장을 하고 있었음.  천안문사태가 변화를 일으킨다. 

 

 

 

 

 

18. 80년대말 학생시위가 커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천안문광장까지 시위대가 점령을 함.  피를 보는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리핑이 총대를 멤.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쏜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19. 덩샤오핑등은 리핑이 후계구도 선두주자 였지만 천안문에서 피를 묻혀 개방개혁으로 외부로 나가기에 장애가 있다는 판단들을 함.  지방인 상하이를 맡고 있어 피가 묻지 않았고, 중앙에 파벌이 없는 장쩌민을 얼굴마담격인 후계자로 세우고 리펑은 2인자격인 총리를 맡아 실권을 행사하는 구도가 된다. 

 

 

 

 

20. 장쩌민은 1989년 주석직에 올라 권력을 잡았지만, 등샤오핑이 디지는 1997년까지는 실권은 등샤오핑이 행사하고 장쩌민은 상왕정치를 당함. 1997년 등샤오핑이 디지면서 드디어 제대로된 권력을 장쩌민이 쥐게 됨. 

 

 

 

 

 

21. 장쩌민이 나쁜놈 같지만, 장쩌민 말도 들어봐야된다. 등샤오핑이 1997년 죽고 이제 드디어 권력맛을 좀 볼까 하는데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물려줘야하는 2004년이 돌아옴.  정말 넘겨주기 싫었을것 같음.  

 

 

 

 

 

22.  장쩌민은 군사위원회 주석자리를 후진타오에게 안물려주고 2년간 버틴다. 나도 상왕정치 좀 해보자는 심정으로 판단됨.  여기서 2편으로 넘어가면 연결이 된다.

 

 

 

 

 

 

한줄요약.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출처: https://ranto28.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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